그룹명/나만에 이야기

민철이가 ...

모글리一兵 2012. 10. 29. 21:53

 

 

 

제 1회 지역인재견습직원선발시험에서 전국구 농업직 30명을 구직하는데에 합격한것은 아직도 믿을 수 가 없다. 솔직히 나는 공부를 잘 하지 못한다. 시험기간에 힌트를 알려주면 내가 시험 전날이 아닌 그 날에 공부하고, 어떤 얘는 시험전날에 공부해서 비슷한 점수가 나와서, 가끔 몇몇 얘들은 나보고 멍청하다고 한다. 솔직히 난 멍청하니까 공부하는것이다. 그 멍청한 것이 내가 '노력'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시험기간만 공부한 것이 아니다. 자격증을 따기위해, 대회를 준비하기 위해 공부를 했다. 그리고 영어도 소홀히 할 것 같아서 조금씩 해두었다. 학교에 남아서 10시까지 한적도 있다. 기능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아빠는 거의 나를 포기했다. 형을 믿고 있었나 보다. 지금도 게임은 가끔씩 하지만, 그때는 3~5시간을 하고, 그 때까지 공부는 영어학원만 다니고, 하지 않았다. 모의고사가 90개대를 위 아래로 휘청거릴정도였다. 과학을 좋아했지만, 보기 좋은 점수는 아니였다. 중학교 3학년땐 정신이 약간 들었었나 보다. 조금 공부해서 모의고사를 110개, 후반에는 133개를 맞았다. 그러나 그때도 여전히 이런 생각을 했었다. "역시 공부하고 나랑 적성이 안맞군."했다. 게다가 인문계 가면 공부를 더 해야한다는 생각을 하니 진절머리가 났다. 2학년때부터 전문계고를 갈 생각을 해 두고 있었는데, 그나마 과학계열인 식물하고 잘 맞을것 같아서 지금 내가 다니고 있는 학교인 용성고를 썼다. 식물공부가 그나마 재밌을것 같았다. 그라고 일찍히 취업에 나가고 싶었다. 대학교가면, 또 공부를 해야한다고 생각해서 그랬다. 그러나 그 학교를 지원했을 때, 착오가 생겼다. 전체수석으로 들어온 것이다. 이것이 내가 공부만 하게 만드는 시발점이 되었다. 솔직히 말하면 다음에는 절대 그런자리에 가고 싶지 않고싶다. 너무 부담될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상당히 받았다. 어쨌든,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면 오늘 이자리까지 만든것이 그 때문일지도 모른다. 좌우지간, 열심히 하려고 노력했다. 처음으로 라이벌 관계에 놓이게 되었다. 2명과 경쟁 해야 했다. 한 명은 1학년 때 전학갔지만, 서두에 내가 말한 얘랑 경쟁하게 되었다. 어쨌든, 1학년 때 시험기간에 힌트는 중요한 정보여서, 절대 누출되지 않도록 했었다. 그 때문에 몇몇 얘들한테 미움을 샀나 보다. 그러나 2학년 때는 생각을 바꿔 다 알려줄려고 했다. 열심히 공부하라는 나의 의사가 되겠다.
1학년 때부터, 전진대회를 나갔는데, 죽기 살기를 각오하고 골든벨 분야에서 열심히 공부해 전국본선까지 진출했지만, 떨어졌다. 전국대회의 장벽을 뼈저리게 느꼈다. 하지만 실패가 어떻게 보면, 교훈으로 삼을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어 2학년 때는, 전공분야인 조경임업분야를 나갔다. 열심히 한 성과인지 전국대회에서 우수상을 수상하였다. 그 때는 정말 기뻐서 날뛰었다. 하지만 최우수상을 못탄것은 아쉬웠다. 밤 늦게까지 남아서 공부한 보람도 있었다. 올해는 전공분야가 새롭게 개편되서, 감정부분에서 말아먹어서 장려상을 수상하였다. 그러나 기분은 매우 안좋져서, 할 말을 잃게 만들었다.
1학년 때 대학을 가기로 마음을 처음으로 먹었다. 전공공부를 심화적으로 하고 싶었다. 그러나 3학년 때 뜻밖의 기회가 찾아왔다. 특성화고대상으로 도청에서 지방직을 선발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기회를 저버렸다. 대학을 가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좀 아쉽기도 했다. 또 다시 기회가 찾아왔다. 처음으로 행정안전부에서 전국을 대상으로 국가직을 선발한다는 것이었다. 그 기회를 놓치면 후회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 시험을 응시했다. 그러나 과목은 전공과목이 아니어서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어, 국어, 한국사는 나에게 큰 난관으로 찾아왔다. 셋다 인문과목일 뿐만 아니라 정말로 공부하기 까다로웠다. 공무원 책을 비싸게 돈주고 사서 공부를 했다. 그러나 전혀 이해가 안될 뿐만 아니라 어려워서 책을 집어 던졌다. 생각을 해보았다. 특성화고 대상이고, 시험을 저렇게 어렵게 낼 일이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고등학교 수준의 영어와 국어 한국사를 공부하기로 한 것이다. 그제야 이해가 갔지만, 어렵게 나올까봐 겁이 났지만, 페이스를 밟았다. 아침 9시부터 학교자습실, 학생회관를 10시 까지 있다 나오고, 11시까지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인터넷 강의를 들었다. 시험 당일 서울의 무학여고에서 시험을 치렀다. 내 예측은 적중했다. 문제가 쉽게 나왔다. 덕분에 무사히 합격하고, 면접도 무사히 마쳤다. 어쨌든 살았다는 생각밖에 안들었다.
지금 나는 내년의 나의 직장에서 살아남기위해 공부하고 있다. 실용영어랑 한자를 공부하고 있다. 물론 공부는 재미가 없다. 그러나 무시당하기 싫다. 그래서 공부한다. 그러나 고등학교생활을 거의 공부로만 보내서 쉬엄쉬엄 하려 한다. 놀때는 재밌게 놀려고 한다. 앞으로 공직자생활하면서 산업기사 이상의 필요한 자격증을 취득하고, 민원봉사대상에도 수상하고, 사무관이 되는것이 나의 목표이다. 이 '노력'가지고 뛰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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