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전 숭례문
80년전 일제 강점기때의 숭례문
50년전 한국전쟁때 포화속에서도 남은 숭례문
40년전 숭례문
100년만에 문화재 일반인 공개를 알리는 이 당선자
이명박 당선인은 2002년 서울시장 취임사에서 "광화문과 숭례문이 시민과 더욱 친숙하게 될 수 있도록 보행공간으로 넓히고 횡단보도를 설치해 세계적인 우리 유산을 시민의 품으로 돌려놓겠다"고 강조했다.
그 이후 2005년 5월 27일 숭례문 주변 광장이 개방된 데 이어 이듬해 2층 누각을 제외하고 숭례문이 완전 개방됐다.
이명박 당선인은 자서전에서도 숭례문 개방의 의미를 매우 높이 평가했다.
이 당선인은 "숭례문 개방 또한 매우 뜻 깊은 일이었다. 오랜 세월동안 숭례문은 어느 누구에게도 접근을 허락하지 않았다. 시민들은 국보 1호라는 숭례문 앞에서 사진 한 장 찍을 수 없었다. 차도로만 둘러싸여 있던 숭례문이 근 1세기 만에 다시 시민들의 품으로 돌아온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일부 네티즌들은 이 같은 이 당선인의 숭례문 개방 정책과 안전대책 없는 섣부른 개방이 숭례문 소실이라는 비극으로 이어진 만큼 이 당선인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불에탄 숭례문
화재로 부분 붕괴가 이뤄진 국보 제1호 숭례문 인근에 11일 오전 국화꽃이 놓여져 있다.
아~남대문 폐허를 곡함 !!
<고은>
머리 풀고 울어에야 하리
옷 찢어 던지며 분해야 하리
오호 통재
이 하루아침 남대문 폐허를 어찌
내 몸서리쳐 울부짖지 않으랴
돌아보라
6백년 연월 내내 한결이었다
이 도성 남녀노소들 우마들
이 나라 이 겨레붙이 모진 삶과 함께였다
혹은 청운의 꿈 안고
설레어 여기 이르면
어서 오게 어서 오시게
두 팔 벌려 맞이해 온
가슴인 나의 남대문이었다
혹은 산전수전의 나날
떠돌이 하다 여기 이르면
어디 갔다 이제 오느뇨
활짝 연 가슴 밑창으로
안아줄 너의 남대문이었다
단 하루도 마다하지 않고
단 하룻밤도 거르지 않고 지켜서서
숙연히..
감연히..
의연히..
나라의 기품이던 저 조선 5백년
저 한민족 1백년의 얼굴이었다
온 세계 누구라도
다 오는 문 없는 문
온 세계 그 누구라도 다 아는 만방
개항의 문 정녕 코리아나의 숨결
서울 사람의 눈빛 아니었던가
이 무슨 청천벽력의 재앙이냐
이 무슨 역적의 악행이냐
왜란에도 호란에도 어제런듯
그 동란에도 끄떡없다가
이 무슨 허망의 잿더미냐
여기 폐허 땅바닥에
엎드려 곡하노니
여기서 주저앉지 말고
멈추지 말고 떨쳐 일어나
다시 바람 찬
천년의 남대문 일으켜낼지어다
여봐란듯이 저봐란듯이
만년의 내일 내 조국의 긍지
우뚝 세워낼지어다
숭례문에서 파수의식을 이렇게 아름다운 문화 유산을 그나마 다행인건 60년대 숭례문 해체복원 도면과
2006년도 복원할수 있는 자료와 도면이 남아 있어 다행이다 고증적인 철저한 복원을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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