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 문화유산

만복사 석인상 발굴 이후 ~~~~~~~~~~

모글리一兵 2009. 10. 20. 17:14

 

 

 


석인상의 형태는 사각형 돌기둥에 3개의 면만을 사용하여 사람형상을 조각하고 나머지 한 면은 편평하게 다듬었다. 다듬은 면에는 두 개의 구멍이 확인되는데, 위쪽 구멍은 머리 정상부에서 아래쪽으로 122cm 내려온 곳에, 두 번째 구멍은 318cm 내려온 곳에 있다.


석인상의 머리부는 정상부가 둥글고 볼록하게 솟아있으며, 얼굴은 안구(眼球)를 심하게 돌출시켜 분노의 모습을 띠고 있다. 몸통부는 상반신에 옷을 걸치지 않은 반나체(半裸體)이며, 오른손은 완전히 구부려 주먹에는 그 성격이 불분명한 물건을 쥐고 있다.


군의(裙衣)는 허리부분에서 묶어 상단부 옷자락이 밖으로 뒤집혀 늘어뜨렸으며, 옷주름은 굵은 물결무늬로 선명하게 돌출시켰다. 하반신은 수직으로 늘어뜨린 옷주름에 가리어 다리부분은 간략하게 표현되었다. 다리의 아래쪽은 별개의 대좌(臺座)를 사용하지 않고 사각형의 돌기둥을 뾰족하게 다듬어 지하에 묻히도록 하였다. 석인상의 전체 높이는 550cm 이며, 머리위에서 다리 끝까지의 길이는 370㎝ 내외이다. 


이 석인상의 동남쪽에 또 다른 석인상이 자리한다. 이 석인상은 발굴된 석인상과 규모 및 형태가 서로 흡사한 것으로 추정되며, 머리부분은 현재 남원향토박물관 전시실 입구에 전시되어 있다. 머리부분은 본래 석재가 짧았던지 목 부분에 촉을 만들어 동체부 상단부 중앙에 뚫린 촉구멍에 끼워 맞추도록 되어 있다.


석인상의 용도와 관련해서는 당간지주, 신장상, 석인상, 장승 등 다양한 견해가 있다. 그런데 좌우대칭인 두 개의 석인상이 비교적 온전하게 보존된 바닥부분에서 45cm의 간격을 두고 있으면서 서로 마주보는 내측의 평면에는 두 개의 구멍이 동일하게 맞뚫려 있는 점에서 일단 당간지주로 사용되었을 개연성이 높다.


그리고 이 석인상의 성격은 얼굴이 분노형이고 상반신에 옷을 걸치지 않은 반나체형으로 표현된 점에서 사찰이나 불법을 수호하는 불교의 수호신인 인왕상, 이왕, 이천상, 금강역사일 가능이 높은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석인상의 이전과 관련해서는 지도위원회의와 문화재청의 심의 결과, 석인상이 사고위험이 매우 높은 곳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석인상의 안전한 관리 및 도로교통의 원활한 흐름을 위해 임시 이전을 실시하고, 향후 남원 만복사지에 대한 종합적인 정비계획안이 수립되고 전체 사역에 대한 발굴조사가 이루어져 석인상의 본래 위치가 밝혀지게 된 후 현재 지하에 묻혀 있는 동편 석인상과 함께 재 이전을 검토해야 한다는 문화재청의 결정에 따라 우선 도로변에 자리하고 있던 석인상을 안전한 만복사지 경내로 이전 설치함으로써 100여년만에 웅장한 석인상의 전체 모습이 밖으로 드러나게 되었다.


 

                                                                         만복사지당간지주(萬福寺址幢竿支柱)  보물 제32

                                                                            만복사지오층석탑(萬福寺址五層石塔)   보물 제30호

 

<조선고적도보>에 수록된 만복사지당간지주 및 석인상(왼쪽)과 만복사지 오층석탑(오른쪽)의 모습이다. <조선고적도보>의 편저자인 동경제대 건축과 세키노 타다시(關野貞) 일행의 고적조사행로에 비추어 보면, 위의 사진자료는 1910년 11월 9일에 촬영한 것이 확실하다

 

그런데...석인상과 당간지주 앞에 있던 한기의 석인상은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

위 사진은 1910년도에 촬영한것이란데  남원시와 문화재청은  출처를 밝혀야 될것이며 원래 저자리로 복원해야 맞는거 아닌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