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 가는 길 =남원 순천 산업도로를 타고 구례 에서 하동 방향 약 2키로 정도 가다 보면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 운조루가 나온다
고택 운조루는 1776년 (영조 52) 류이주가 지은 건물로 건축 당시엔 76칸 이였는데 현재는 60칸 이라고 한다 230년된 조선 양반 가옥이다
집 앞의 오봉산은 신하들이 엎드려 절하는 형국이라고하며, 연당은 남쪽의 산세가 불의 형세를 하고있어 화재를 예방하기 위하여 조성한것이라고 한다.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이 일대는 금귀몰니 (金龜沒泥), 금환락지 (金環落地), 오보교취 (五寶交聚), 혹은 오봉귀소 (五鳳歸巢)의 명당이 있는 곳이라고 하며, 이 집터에서 거북이의 형상을한 돌이 출토되었기에 금귀몰니의 명당으로서 남한의 3대 길지로 알려져 있다.
운조루에는 바깥사랑채, 안사랑채, 아랫사랑채 등으로 각각 누마루가 있었으 나 지금은 아쉽게도 안 사랑채와 아랫 사랑채의 누 마루는 남아 있지 아니하다. 현재 이 집은 건 평 129평 으로 一 자형 행랑채와 북동쪽의 사당채를 제외하고 T 자형의 사랑채와 ㄷ 자형의 안채, 안마당의 곡간채가 팔작지붕, 박공지붕, 모임지붕으로 연결되어있는 일체형 구조를 보이고 있다.
백두대간에 끝자락에 천하 명당이 있었으니 그 곳이 바로 운조루 터이다
조선후기 전통적인 양반가의 주택으로서 당시에 생활상을 알 수 있으며 오물 조밀한 건축 양식
안채와 사랑채 행랑채 사당 연당 초당 지금도 잘 보존 되어 있다
사랑채 고풍 스런 퇴마루 이곳에 수많은 묵객들이 드나 들었을 것이다
*** 쌀 뒤주***
이댁의 넉넉한 인심을 엿볼수 있는 뒤주이다 타인능해 (他人能解)누구든지 마음대로 쌀을 퍼가라
타인능해’에서 알 수 있듯이 예로부터 베풂과 나눔을 실천한 ‘적선지가(積善之家)’로 인근에 명성이 자자했다. 지금도 집 안 도처에서 가난한 이웃을 배려한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동학과 여순 반란 사건 625 전쟁 통에도 이 댁은 무사했다 한다
아마도 그건 적선지가의 덕이 아닐까 생각 한다
이댁 주인이 이용했던 우마차 수레 바퀴가 사랑채 마루 아래에 잘 보존 되고 있다
류씨 집안 사람들에 자랑 거리 위성류라는 나무이다 중국으로 사신으로 갔다가 선물로 받은 거란다
***대문에 걸린 호랑이 뼈 ***
왼쪽은 소 여물통 구시이고 오른쪽은 이댁 분들이 섬진강에서 보우트 대용으로 탓다는 원통 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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